감성으로 읽는 시 한 편

「금 간 꽃병」 - 쉴리 프뤼돔

Rabbit_J 2025. 5. 11. 14:06

 

 

 

가끔 어떤 시는, 마음 깊은 곳에 살며시 금이 가게 만든다.
프랑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의 시「금 간 꽃병(Le Vase Brisé)」이 바로 그런 시다.
그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내면의 상처를 꽃병이라는 상징을 통해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 마편초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시의 첫 구절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겉보기엔 여전히 아름다워 보이는 꽃병.
그러나 부채의 아주 가벼운 스침으로 생긴 ‘작은 금’은 결국 꽃을 시들게 만들고, 물을 스며나가게 한다.
이처럼 사랑도 관계도, 아주 사소한 상처 하나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금 간 꽃병」 - 쉴리 프뤼돔

 

이 마편초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오고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손대지 말라, 금이 갔으니.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이 시는 단순히 이별이나 아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상처 하나가 관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섬세하게 경고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긴 아주 가벼운 한 마디, 한 행동이 금이 되고,
그 금은 끝내 꽃을 시들게 한다.